연휴와 함께 찾아온 무기력
5월의 연휴의 시작과 함께, 감기가 걸렸습니다.
꾸준히 나가던 헬스장도 이틀 정도 쉬다 보니, 더 피곤하고 더 힘들어지는 컨디션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무기력 그 자체였습니다.
할 일은 많았지만, 그리고 하루 루틴을 위해서 채워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그냥 모든 것들이 하기 싫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기적으로 이런 현상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감기와 함께 온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무기력은 그저 ‘피곤함’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지만 손이 가지 않고, 쉬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며, 삶의 방향을 잃은 듯한 공허함에 휩싸인 감정.
이것이 바로 무기력, 무기력입니다.
2013~14년, 무기력이 심하게 찾아 왔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인지과학자 박경숙 교수님이 쓰신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다시금 들추어 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기력이 단순한 의지박약이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님을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구조, 관계, 교육, 가치관이 만들어낸 일종의 심리적 “작동 정지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그렇다면 이 정지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작동할 수 있을까요?
무기력은 병이 아니라 증상이다
이 책에서 무기력을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합니다.
무기력은 “의욕의 상실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향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병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고립되었을 때 나타나는 징후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사회적 감각 상실’이라 표현합니다.
즉, 무기력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세상’ 사이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열정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삶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물론, 지금 저의 상태는 사회적 감각 상실과는 거리가 있는 무기력이라고 판단되나, 10여년전 저의 상태는 딱 이 상황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후배사원들은 비슷한 상황일 터이니, 그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왜 무기력해졌을까?
효율의 압박, 비교의 고통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잘 살아야 한다’ 혹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을 갈아 넣고, 누군가는 SNS 속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낍니다.
“무기력은 경쟁에서 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 자체를 견딜 수 없어질 때 찾아온다.”
즉, 우리는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게임’에서 아예 포기해버리는 심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표 없는 성실함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기력한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무척 성실하다. 다만 무엇을 위해 성실한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말은 ‘열심히 하는데 허무한 사람들’을 완벽히 설명합니다.
외형적인 성실함 뒤에 방향을 상실한 내면이 자리할 때, 그 빈틈을 무기력이 채워버리는 것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문구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무기력을 극복하는 다섯 가지 실마리
왜 무기력해지는가를 알아보다보니 더 무기력 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게 중요한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럼 무기력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는 삶의 구조를 다시 짜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단순한 동기부여의 차원을 넘어서는 다섯 가지 접근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무기력을 ‘문제’로 여기지 말 것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무기력을 극복하려 애쓰는 것 자체가 무기력을 더 깊게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무기력을 느끼는 자신을 또 다른 실패자로 여길 때, 우리는 자기 혐오의 수렁에 빠집니다.
따라서 첫걸음은 이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지금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저는 이 감정을 “After Sauna”라고 이름 붙여줬습니다. 목욕탕 다녀와서 노곤노곤 피곤한 상태가 무기력과 비슷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으니까요.
2.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것
저자는 “행동의 재시동은 의무가 아니라 욕망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삶을 조여 오지만,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순간 미세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작은 것부터 좋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다시 보거나,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펼쳐보는 것.
중요한 것은 ‘해야 하니까’가 아닌, ‘하고 싶어서’라는 감정의 회복입니다.
저는 쭈욱 야구를 봤습니다. 때마침 제가 응원하는 팀이 연승가도를 달리며, 매우 하고 싶은 TV 야구 중계 보기가 완성되었습니다.
3. 나만의 리듬을 회복할 것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로 살아갑니다.
저자는 “타인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데 익숙해지면, 결국 자신의 리듬을 잃는다”고 경고합니다.
무기력은 종종 과속 후의 멈춤입니다. 따라서 일상의 리듬을 다시 조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루틴, 산책하는 시간, 노트에 아무 말 쓰기 같은 일상이 리듬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틀간 쉬었던 운동을 다시 갔습니다. 평소보다 컨디션도 별로이고, 무게도 잘 안올랐지만, 그냥 했습니다. 일상 루틴의 궤도에 다시 오르기 위해서이죠.
4. 연결의 회복
책에서는 ‘사회적 연결망’의 중요성도 강조됩니다.
무기력은 종종 고립과 함께 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람과의 접촉’이 아니라, 관계의 질입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 중, “내 이야기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다시 연결되십시오. 때로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메시지가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기폭제가 됩니다.
저는 지금의 이 상황을 친구에게 속 시원히 털어놨습니다.
지금 좀 무기력해진거 같은데,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려고 하고 있다고 말이죠.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물론, 위로의 말 한마디와 응원의 말 한마디는 더욱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5. 나를 움직이게 했던 기억을 복기할 것
무기력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단절시킵니다.
저자는 “예전에는 어떤 일에 설렜고, 무엇에 집중했는지를 떠올려보라”고 조언합니다.
특정 장소, 노래, 사람, 혹은 계절. 과거의 ‘살아있음’을 회상하는 것은 단순한 추억놀이가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했던 내면의 불씨를 다시 만나는 과정입니다.
최근에 했던 일들을 쭈욱 되돌아 봤습니다.
업무일지, 업무계획, 운동기록 등…
다시 보다 보니, 다시 달리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열심히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더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살아낸다는 것
무기력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되돌아오고, 때로는 다른 얼굴로 위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기력은 살아 있음의 반대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통로일 수 있다.”
이 말은 위로이자, 지침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무기력했고, 또 앞으로도 무기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 속에서도 길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무기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잘 이겨냈지만, 다시 오겠죠? 그럼 또 이겨내면 됩니다. 그 뿐입니다.
마무리하며: 무기력한 당신을 위하여
언젠가 누군가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안 하고 싶은 것부터 줄여보세요.”
모든 걸 잘하려는 욕심 대신,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그게 바로 무기력 탈출의 첫 번째 계단일지도 모릅니다.
꼭 매일 매일 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매일 매일 바쁠 필요는 없습니다.
소파에만 멍하니 있었지만, 내 마음은 지구 반 바퀴쯤 돌고 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Go for it!
참고문헌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미래엔,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