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자기결정, 좋은 책을 말씀드리기 전에 일단 고백부터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과시적 독서가입니다.
책을 읽는 주된 이유는 멋진 문구와 내용을 기억했다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해당 내용을 슬며시 인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 생각인양 이야기하고는 반박하는 상대에게 실은 누구누구의 사상인데라고 밝히는 것도 즐겨했습니다. 그 때 상대방의 표정을 보는 것이 저의 고약한 취미였죠. 요새는 이 버릇을 많이 고쳤지만 그래도 약간 남아있긴 합니다.
과시적 독서가는 스스로에게 많은 숙제를 줍니다. 유명한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어려운 책들도 많이 읽어야 더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그 중 하나가 “내용을 짧은데 어려운 책”이란 것이었고, 이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입니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 있으며, 내용도 짧고 단락도 큼직큼직 합니다만, 읽고 나면 멍 해집니다. ‘무슨 이야기지?’ 싶습니다. 그래서 정말 여러 번 읽게 되었습니다. 100페이지가 채 안되는 두께지만 4번을 읽었으니 400 페이지의 책이 되어버렸네요. 과시적 욕망의 대가를 제가 이해한 대로 한 번 쉽게 적어보겠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쁠까?”, “이 일을 꼭 내가 해야 하나?”
오늘도 이 생각하셨죠? 저도 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할 것 입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정작 내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들도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자기결정』에서 이 질문의 시작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결정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설계하고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문장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기대, 사회적 규범, 몸담고 있는 조직의 요구에 반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 ‘나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삶은 해석이다
비에리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삶을 철학적 개념이나 추상적 도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일상의 언어를 섞어 현실적인 예로써 설명합니다. 비록 저는 이러한 표현이 저는 이해하기 더 난해했지만 말이죠.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이 것은 또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매우 현실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보통 우리는 선택지를 많이 가질수록 더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비에리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그 선택지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야구 중계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행위가 단순한 ‘휴식’인지, 아니면 ‘현실 도피’인지는 해석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삶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곧 우리가 얼마나 자기 결정적인 삶을 사는지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정신승리나 변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깊은 통찰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자율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비에리는 자율성을 ‘태도’로 보고 이 태도는 훈련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기결정은 훈련의 산물이다. 그것은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점차 확립되는 태도다.”
우리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 — 이 모든 사소한 결정들이 결국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흐름이 바로 ‘자기결정적 삶’의 기반이 된다는 뜻입니다.
비에리는 자기결정이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삶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자율성도 없다는 뜻이지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우리가 자기결정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과 ‘기대’에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게 되고는 합니다만 이 점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결국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내면화된 타인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되어 이를 의식하며 우리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결정은 나의 것이 아니며, 자기 결정적인 삶은 이 시선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책에서는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은 종종 불편하고, 고립감을 동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실존적 책임 — 자유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
비에리는 『자기결정』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유는 종종 가볍게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무거운데 결국 자기 결정적인 삶은 모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며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결정은 자기 기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삶의 연출자이며, 동시에 관객이기도 하다.”
우리 삶의 연출자이자 관객이라니, 참 멋진 말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 무서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관객의 입장이라면, 매우 객관적으로 본인을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자기결정의 조건들
책에서는 자기결정을 위한 조건들을 다음의 세 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것
- 정서적 자율성(Emotional autonomy):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다루는 것
- 시간의 주체성(Temporal sovereignty): 내 시간을 내가 설계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 조건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훈련을 통해서, 아무리 바쁘고 혼란스러운 삶의 한복판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라
일에 치이고, 약속에 쫓기며, 스케줄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단이나 변화가 아니라 작은 리듬의 회복입니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 휴대폰을 내려놓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혹은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시간. 이 짧은 순간들이 쌓여 자기결정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죠.
비에리는 이 책을 통해 삶을 거창한 철학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으로 회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결정적인 삶이란, 마치 산책하듯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당장 중요한 일, 시급한 메일, 누군가의 기대와 걱정들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면, 이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삶을 ‘경쟁’이 아니라 ‘산책’정도로 여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자기 결정적인 삶의 문턱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 자기 삶의 설계자로 살아가기
『자기결정』은 단순한 철학서라기 보다는 우리의 하루를 구성하는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이건 진짜 내가 원하는 건가요?”라고 속삭이는 지적인 알람입니다. 자기 삶의 편집권을 다시 손에 쥐게 해주는 책입니다.
책의 부제처럼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지요.
“변화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해는 늘 시간이 걸린다.”
그렇습니다. 자기결정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인사이트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잠든 자신을 다시 깨우는 일이고, 퇴근길에 핸드폰 대신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는 일이며, “이건 그냥 관성인가?” 하고 자문하는 작은 멈춤입니다.
아직도 주변의 요청에 끌려 다니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리듬을 바꿔보세요.
천천히 차도 한 잔 마시고, 산책을 느긋하게 하고, 스케줄표에 ‘아무 것도 하지 않기’라는 항목을 당당히 적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인생이라는 대본을 작성 중이지요! 흥행 대박이 날 예정인….
Go for it!
참고문헌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은행나무,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