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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의 환상 : 정말 효과가 있을까?

  • Gofore@t 

설레는 단어 효소

저는 대학원에서 효소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마음 먹었을 때, 다양한 실험실들이 있었지만 효소공학실은 교수님도 엄청 엄격하시고 실험도 매우 힘들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효소” 그 가슴 설레는 단어에 무엇인가 멋있어 보여서 지원을 하였습니다. 덕분에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열풍인 고대 곡물과 식물성 효소들의 열풍은 제가 “효소”라는 단어가 멋있어서 실험실을 선택한 것과 일부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효소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포장되어 있으며, 소화제보다 효소제품을 더 선호하는 현상도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 효소들… 우리 몸 속에서 진짜 “일”을 하긴 할까요?

효소도 환경을 가린다

효소는 살아 있는 생체 촉매입니다. 즉, 특정 조건에서만 잘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효소가 민감한 건 pH와 온도입니다. pH와 온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삐져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너무 가혹한 pH와 온도 조건에 노출되게 되면, 효소는 한낱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해집니다.

효소는 자신에게 맞는 적정 pH와 온도가 있고, 이를 벗어나면 활성(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효소의 작용 부위인 촉매 자리가 이온화 상태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열쇠가 살짝 휘어지면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위는 pH 2, 효소에게는 생지옥

이제 시중에서 판매되는 효소제품들이 일을 하는지 알아볼까요?

우리의 위(pH 1.5~2.0)는 매우 가혹한 ‘산성 환경’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야말로 효소에게는 지옥의 환경입니다. 대부분의 식물 유래 효소가 작동하는 적정 pH는 5.0~7.0사이이며, 이보다 낮거나 높으면 활성도가 ‘뚝’ 떨어지게 됩니다.

간단한 예로, ‘아밀레이즈’라는 대표적인 소화효소는 pH 6~7에서 최고 활성을 보입니다. 그런데 위에서는 pH가 2.0이므로, ‘아밀레이즈’는 그 환경에 들어서는 순간…

네, 즉사입니다. 더 이상 효소는 잊으세요~ ‘아밀레이즈’라는 이름의 단백질을 섭취한 것이 됩니다.

pH에 특히 예민한 효소

특히, 효소의 활성은 pH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 이유는 효소가 기질(효소의 분해 대상)에 작용을 할 때 이온화 과정을 거치며 이것이 pH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효소의 활성을 나타내는 Vmax(브이맥스라고 부릅니다)는 pH에 따라 달라지는데, Vmax가 높다는 건 효소가 활발히 일을 잘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위처럼 pH가 너무 낮은 상태에선, Vmax는 바닥까지 낮아집니다.

마치 아이폰 배터리가 1% 남은 상태에서 고사양 게임을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위의 내용이 “헨더슨-하셀바흐” 공식입니다. 효소의 반응속도(일을 처리하는 속도)와 관련된 공식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pH가 적정 범위를 벗어나면 효소의 반응속도는 급격히 감소하며, 심하면 ‘제로’가 된다.”

네~ 위에서 효소의 반응속도는 제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팔릴까요?

카무트든, 현미든, 귀리든, 발효 효소 제품은 대부분 ‘기능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고대 곡물”, “발효”, “천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효소가 주는 환상까지….

심지어 일부 제품들은 비이커에 빵을 넣고 효소를 넣었을 때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자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실험입니다. 실제로 우리 몸에 들어갔을 때가 아닌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이 효소들이 진짜 사람의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검증된 바를 알려주는 제품은 전무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시는 분들을 위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안 되더라도 장까지 내려가면 작동하지 않을까?”

네~ 이론상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도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듯이, 효소가 장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장용성 코팅이나 캡슐화 기술 같이 위에서 살아남아 장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단순한 분말 형태입니다.

즉, 제품을 만들 때 효소는 있었지만,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순간 예선에서 탈락해버리는 선수가 되어버리며, 하나의 단백질로 인식되어 우리 몸에서 단순 영양분으로 소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혹자는 또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위산과 만나기 전 상태로 pH가 높게 유지된다면, 효소가 작동하지 않을까?”

네~ 우리는 그것을 “만성소화불량”이란 이름의 질병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전문의와 상의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마무리하며 – 효소인가 마케팅인가?

효소는 소화 및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되는 매우 효율적인 생체 촉매입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작동 가능한 환경”이 마련 됐을 때입니다. 시중에 파는 효소 제품들이 실제로 위와 장 속에서 살아남아 작용한다고 주장하려면, 그에 대한 실험적 근거를 증명해야 합니다.

pH와 온도에 대한 안정성 실험 등의 간접적인 증명,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인체적용실험 등입니다.(물론 효소식품은 일반식품이라서 인체적용실험이 필수요소는 아닙니다.)

지금처럼 그럴 듯한 말과 환상으로만 효소 제품이 팔리고 있다면, 이는 아마도 과학이 아닌 마케팅일 것입니다.

먹는다고 다 몸에 좋은 건 아닙니다.

입에 넣기 전에 ‘뇌’로 먼저 소화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Go for eat!

참고문헌

장판식 외 4인, 이해하기 쉬운 식품효소공학, 수학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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