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더스 증후군 (Hoarders Syndrome),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 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상은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방 안 가득 쌓여 있는 신문지, 다 낡은 전자제품, 깨진 컵 하나까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그들의 모습은 종종 안타깝고도 신기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출처 : News1>
그런데, 우리 주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이 호더스 증후군의 ‘금융 버전’을 앓고 있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입니다.
(최근에 리밸런싱을 진행했는데, 그 이후로 주식이 많이 올라서 쓰는 글이 절대 아닙니다. 휴우우~)
호더스 증후군 : 이건 언젠간 쓸모 있어질 거야!
호더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거 언젠간 필요할지도 몰라서…”
“이건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버리긴 아깝지…”
놀랍게도, 이 말은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을 못 파는 이유와 아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건 작년에 고점에 샀는데 지금 팔면 손해잖아…”
“이 종목, 예전에 반등 크게 한 번 했었어. 다시 갈 수도 있어.”
예컨대, 2021년 고점에서 2차전지 ETF를 10만 원에 산 묵돌이는 지금 그 ETF가 4만 원대로 내려왔는데도 팔지 못하고 매일 주식 앱만 쳐다봅니다. 친구들이 말합니다.
“그거 그냥 손절하고 다른 데 투자하지 그래?”
그러면 묵돌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에이~ 언젠간 다시 올라가지 않겠어?”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호더가 낡은 믹서기를 보며 “이건 20만 원짜리였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묵돌이도 그 주식이 자신에게 과거 어떤 희망과 기대였는지를 알고 있기에 쉽게 손을 떼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식은 팔기 전까지는 손실이 확정되지 않으니까요.
금융 호더스 : 네가 소유하는 것들이 결국 너를 소유하게 된다.
“The things you own end up owning you.”
영화 《파이트 클럽》의 유명한 대사 중 하나입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한 돈이 많을수록, 들인 시간이 길수록, 정보에 투자한 노력이 클수록, 우리는 점점 주식의 ‘주인’이 아니라 ‘포로’가 되어갑니다.
매일 시세창을 들여다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에 감정을 맡기고, 손절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고 스스로를 탓합니다.
익절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매수할 때 생각했던 목표가격은 도달했는데 선뜻 손이 나가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주식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마치 호더들이 방 안의 물건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며 쓰레기더미를 피해 생활하는 것처럼, 우리는 ‘버리지 못한 주식’들 사이를 감정적으로 오가며 하루하루를 소비합니다.
누가 봐도 재정적, 감정적 공간을 침범당하고 있는데도,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말하죠.
감정의 혼합: 후회, 집착, 그리고 자기방어
호더와 금융 호더 사이에는 정서적인 유사점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손실 회피와 확증 편향입니다.
- 손실 회피(Prospect Theory):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본능이 훨씬 강합니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버는 것보다, 10만 원을 잃지 않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자신이 이미 내린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반대 증거는 무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찾습니다.
그래서 주식을 못 파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원자재값이 다시 오른다니까 이 종목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이 회사가 기본은 튼튼하다고 하던데…”
“우리 부장님이 올 겨울엔 꼭 오른다고 했으니까!”
이 말이 꼭,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이건 언젠가 쓸모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호더의 논리와 비슷하지 않나요?
청소와 리밸런싱은 똑같이 어렵다
그렇다면 해답은 뭘까요?
정리입니다.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호더들을 돕는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작은 물건 하나부터 버려보는 것입니다.
못 쓰는 볼펜 하나, 종이 한 장부터요. 그러면서 말합니다.
“당신의 공간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주식 투자자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계좌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한 종목을 정리하면, 다른 가능성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계좌라는 방 안에 자리를 비우면, 새로운 전략이 들어올 공간이 생깁니다.
리밸런싱은 단순히 숫자 놀이가 아니라, 감정 정리입니다.
내 돈의 주인이 내가 되는 첫걸음입니다.
결론: ‘금융 호더’가 되지 말자
우리는 모두 잠재적 호더입니다.
옷장에 안 입는 옷이 가득하듯, 계좌에도 안 팔 종목이 잔뜩입니다.
이익이 나도 안 팔고, 손실이 나도 안팝니다.
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를 놓칩니다.
주식은 감정의 보관함이 아닙니다. 미래를 위한 자산의 통로입니다.
때로는 깔끔한 청소가, 가장 훌륭한 투자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계좌 속 오래된 종목들, 다시 한 번 바라보세요.
“이건 정말 회복 가능한 자산인가?”
“이건 지금도 처음 매수할 때와 같이 매력있는 자산일까?”
그리고 가끔은 ‘손절’이 아니라 ‘정리’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금융 호더가 아닙니다.
Go for it!
참고문헌
김진영, 주식 투자의 심리학, 지식과감성, 2021.